우에하라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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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에하라 고지는 일본의 前 프로 야구 선수로, 대학 시절 투수로 전향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199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1999년 신인왕과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하며, 다승왕,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최고 승률 등 투수 부문 4관왕을 달성했다. 2009년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했다. 2013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복귀하여 미일 통산 100승 100세이브 100홀드를 달성했으며, 2019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해설가, 평론가,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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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하라 고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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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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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우에하라 고지 (上原 浩治) |
출생일 | 1975년 4월 3일 |
출생지 | 일본 오사카부 네야가와시 |
신장 | 187cm |
체중 | 87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도카이 대학 부속 오사카 교세이 고등학교 |
대학교 | 오사카 체육대학 |
프로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 ~ 2008)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9 ~ 2011) 텍사스 레인저스 (2011 ~ 2012) 보스턴 레드삭스 (2013 ~ 2016) 시카고 컵스 (201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8 ~ 2019) |
NPB 경력 | |
데뷔 | 1999년 3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
마지막 경기 | 2019년 |
통산 성적 | 승-패: 112승 67패 평균 자책점: 3.03 탈삼진: 1,410개 |
MLB 경력 | |
데뷔 | 2009년 4월 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
마지막 경기 | 2017년 9월 2일, 시카고 컵스 |
통산 성적 | 승-패: 22승 26패 평균 자책점: 2.66 탈삼진: 572개 세이브: 95개 |
국가대표 경력 | |
올림픽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
수상 | |
NPB | 올스타 (1999 ~ 2005, 2007, 2018) 9회 일본 시리즈 우승 (2000년, 2002년) 2회 사와무라 에이지상 (1999, 2002) 2회 센트럴 리그 신인왕 (1999) 골든 글러브 (1999, 2003) 2회 베스트 나인 (1999, 2002) 2회 NPB 최다승 (1999, 2002) 2회 일본 프로 야구 평균 자책점 1위 (1999, 2004) 2회 NPB 탈삼진 1위 (1999, 2003) 2회 트리플 크라운 (1999) |
MLB | 올스타 (2014년) 월드 시리즈 우승 (2013년) ALCS MVP (2013년) |
유튜브 | |
채널 이름 | 상원호지의 잡담혼 |
채널 URL | 상원호지의 잡담혼 유튜브 채널 |
개설일 | 2020년 |
장르 | 야구 |
구독자 수 | 100만명 |
총 조회수 | 4.8억회 |
기타 정보 | |
별명 | 조용한 광대 (The Silent K)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스포츠 백스 공식 웹사이트 |
2. 프로 입단 전
오사카부 네야가와시 출신이다. 친할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소년 야구팀 ‘네야가와 아스나로즈’(寝屋川アスナローズ일본어)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네야가와 시립 제10중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어 소년 야구팀에서 야구를 계속했고, 학교에서는 육상부 소속으로 활동했다. 도카이 대학부속 교세이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외야수 겸 다테야마 요시노리의 후보 투수였으며, 고시엔 대회 출전 경험은 없는 무명 선수였다.
1년 재수 후 오사카 체육대학에 진학하여 투수로 전념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신 대학 리그에서 뛰며 팀의 리그 우승 5회(1학년 춘계, 2학년 춘계·추계, 3학년 추계, 4학년 춘계)에 기여했다. 대학 4년간 통산 36승 4패, 최우수 투수상 4회, 특별상 2회를 수상하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대학 3학년 때 오사카 경제법과대학과의 경기에서는 한 경기 21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0년까지 리그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통산 36승과 13완봉승 역시 리그 기록이다. 같은 해(1997년)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인터컨티넨탈컵에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당시 국제 대회 151연승 중이던 쿠바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고, 대회 최우수 투수상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드래프트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동등한 평가를 받으며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메이저 리그의 LA 에인절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영입 경쟁을 벌였다. 1998년, 당시 애너하임 에인절스에서 제시한 300만달러 규모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에인절스는 우에하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했으며, 스카우팅 디렉터 에디 베인은 우에하라 또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영입을 팀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포함한 다른 많은 팀들도 우에하라가 자유 계약 선수가 될 경우 그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순위(역지명)로 지명되어 입단하게 되었다.
2. 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프로 1년차인 1999년, 매주 일요일 등판 로테이션이 짜여 있어 ‘'''サンデー上原|선데이 우에하라일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반기에만 신인으로서 37년 만에 12승을 올리는 등, 5월 20일부터 9월 21일까지 15연승을 기록하며 역대 4위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는 1966년 호리우치 쓰네오의 신인 13연승 기록을 33년 만에 경신한 것이었다. 최종 성적 20승 4패를 기록하며, 양대 리그를 통틀어 1990년 사이토 마사키 이후 9년 만이자 신인 투수로는 1980년 기다 이사무 이후 19년 만에 20승 투수가 되었다. 다승왕, 최고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최고 승률 등 투수 부문 주요 4개 타이틀을 석권하며 프로 야구 역사상 10번째이자 신인으로서는 3번째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신인왕과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도 동시에 수상했다. 자신을 잡초에 비유한 ‘'''잡초혼'''’이라는 좌우명은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리벤지’와 함께 그해 신어·유행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1999년 시즌 최종전에서는 이미 리그 순위가 결정된 상황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로베르토 페타지니에게 고의사구를 내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는 팀 동료 마쓰이 히데키에게 홈런왕 타이틀 경쟁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는데, 경쟁심이 강한 우에하라는 지시에 따르면서도 마운드 위에서 분함을 감추지 못하고 발길질을 하거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2]2000년에는 7월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이탈하여 9승 7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2000년 일본 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일본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고,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1년에는 4월 12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이탈했고, 후반기에는 오른쪽 무릎 문제까지 겪으며 힘든 시즌을 보냈다. 2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4.02로 개인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2002년에는 200이닝 이상 투구하며 17승 5패의 뛰어난 성적으로 다승왕 타이틀과 함께 두 번째 사와무라 에이지상,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2002년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12탈삼진 1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팀의 4연승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시즌 후 열린 미일 야구 대회에서는 배리 본즈를 상대로 3타석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MLB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에는 7월 20일부터 8월 29일까지 7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는 등 활약했지만, 20승을 거둔 이가와 게이에게 다승왕 타이틀을 내주었다. 그러나 2년 연속 200이닝 이상 투구하며 16승 5패를 기록했고,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4년에는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평균자책점 0.50을 기록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참가와 경미한 부상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시즌 13승 5패와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통산 두 번째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9월 14일에는 전직 모델 야마자키 미호와 결혼했다.
2005년은 시즌 내내 부진하며 9승 12패를 기록,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패전 수가 승리 수를 넘는 힘든 시즌을 보냈다.

2006년에는 정규 시즌 개막 전 열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팀 에이스로 참가하여 3경기 2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7이닝 무사사구 무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다인 7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 5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따냈다. 8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드래프트제 도입 이후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함께 가장 빠른 기록인 191경기 만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시즌 전반적으로 컨디션 난조와 타선 지원 부족으로 8승 9패에 그쳐 2년 연속 한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시즌 직전 부상으로 출발이 늦어졌고, 기존 마무리 투수 도요다 기요시의 부진이 겹치면서 시즌 중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5월 2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8월 5일에는 구단 최초로 4일 연속 세이브를 달성했다. 8월 2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월간 11세이브를 기록하며 구단 신기록 및 NPB 타이기록을 세웠다. 최종적으로 구단 신기록인 32세이브(4승 3패,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MVP 투표 2위에 올랐다. 선발 20승과 마무리 30세이브를 모두 기록한 것은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역대 두 번째였다. 하지만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2007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2, 3차전에 리드 당하는 상황에서 등판하여 이병규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부진했고, 팀은 3연패로 탈락했다. 경기 종료 후 벤치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시즌에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했다. 그해 4월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고, 시즌 종료 후 MLB 진출을 선언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떠났다. 이전부터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MLB 진출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4]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우에하라는 등번호 '''19'''번을 달았는데, 이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했던 1년간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41] 요미우리에서 뛰는 동안 4차례의 센트럴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3. 메이저 리그 시절
2008년 일본 시리즈 이후인 11월 14일, FA를 선언하며 메이저 리그 진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57]. SFX사의 마크 피퍼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2009년 1월 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계약에 기본 합의했고, 1월 13일 2년간 1000만달러(약 9억 엔, 인센티브 최고 600만달러)에 정식 계약을 맺으며 팀 역사상 첫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등번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과 같은 '''19'''번으로 결정했다.
2011년 7월 30일, 토미 헌터, 크리스 데이비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73][6]. 이로써 고교 시절 동기인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팀 동료가 되었으며[6], 등번호는 계속 '''19'''번을 사용했다. 텍사스 이적 후 첫 달인 8월에는 부진했으나 9월에는 회복세를 보이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통산으로는 구원 투수 중 리그 1위의 WHIP(0.72)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7].
그러나 첫 포스트 시즌 경험은 순탄치 않았다.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에번 롱고리아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고[7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과 5차전에서도 각각 미겔 카브레라[76]와 라이언 레이번에게 홈런을 맞으며 포스트 시즌 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77]. 팀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우에하라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78].
이듬해인 2012년 1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으나, 계약에 포함된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여 다음 날 이적을 거부했고, 트레이드는 무산되었다[79]. 텍사스에 잔류한 우에하라는 2012년 시즌 초반 호투를 이어갔으나, 6월 오른쪽 등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80]. 8월 말 복귀하여 시즌을 마쳤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2013년 ~ 2016년)와 시카고 컵스(2017년)에서 활약했다. MLB에서는 4차례의 지구 우승, 2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2013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리그 챔피언십 및 월드 시리즈 우승 투수가 되었다[34]. 또한, NPB와 MLB 기록을 합산하여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100승 100세이브 100홀드'''를 달성했다.
3. 1.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2008년 일본 시리즈 종료 후인 11월 14일, 우에하라는 FA를 선언하며 메이저 리그 진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후 2009년 1월 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계약에 기본 합의했고, 1월 13일 2년간 1000만달러(약 9억 엔, 인센티브 최고 600만달러)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우에하라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으며, 등번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과 같은 '''19'''번으로 결정했다.
2009 시즌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어 제레미 가스리에 이어 팀의 2선발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5] 4월 8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5이닝 동안 1실점만 내주며 데뷔전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두 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도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부상이 잇따랐다. 5월 23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탈수 증상으로 인한 왼쪽 허벅지 뒤쪽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되었고, 27일 통증이 재발하여 DL에 올랐다. 복귀 후 6월 23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는 오른쪽 팔꿈치에 불편함을 느껴 다시 강판되었고, 28일 정밀 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 힘줄 부분 파열이 확인되어 또다시 DL에 등재되었다. 약 8주간의 재활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더뎌지자, 9월 상순 구단은 우에하라가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메이저 리그 첫해인 2009년 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12번의 선발 등판에 그쳤고, 2승 4패, 평균자책점 4.05, 66⅔이닝 동안 4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 왼쪽 허벅지 뒤쪽을 다쳐 DL에 오른 상태로 개막을 맞이했다. 5월에 복귀했으나 구원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하지만 6경기에 등판한 후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다시 DL에 올랐다. 약 한 달간의 재활을 거쳐 6월 29일에 복귀한 후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1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0, WHIP 1.10의 호투를 펼쳤다. 시즌 중 새로 부임한 벅 쇼월터 감독은 우에하라의 안정적인 투구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임시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8월 21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에 등판하여 1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메이저 리그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또한 7월 1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까지 32경기 연속 무사사구를 기록하며 MLB 역대 4위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44경기에 등판하여 1승 2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86, 44이닝 동안 5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우에하라와 1년 계약(2011년)을 맺었으며, 계약에는 2012년 시즌에 대한 구단 옵션이 포함되었다. (계약 총액 550만달러, 인센티브 250만달러 포함, 2012년 옵션 연봉 350만달러)
2011 시즌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케빈 그레그가 마무리 투수로 영입되면서 우에하라는 주로 셋업맨 역할을 맡게 되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시즌 개막 후에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7월까지 43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평균자책점 1.72, WHIP 0.70을 기록했는데, 당시 WHIP는 리그 구원 투수 중 1위에 해당했다. 또한 전년부터 이어온 연속 무사사구 경기 기록을 36경기까지 늘리며 MLB 역대 3위 기록을 세웠다. 안정적인 활약 덕분에 볼티모어 팬들 사이에서는 우에하라가 등판할 때 "코지 콜"이 나올 정도로 큰 신뢰를 받았다.
3. 2.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11년 7월 3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토미 헌터와 크리스 데이비스를 받는 조건으로 우에하라를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했다.[73][6] 이 이적으로 우에하라는 고등학교 동창인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다시 팀 동료가 되었다.[6] 등번호는 요미우리와 볼티모어 시절과 마찬가지로 '''19'''번을 달았다.
레인저스 이적 후 첫 달인 8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6.52, WHIP 1.24를 기록하며 타자 친화적인 홈 구장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74] 그러나 8월 31일에는 시즌 55번째 경기에 등판하며 다음 시즌 계약 옵션 행사 조건을 충족시켰다.[74] 9월 들어서는 10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23, WHIP 0.23으로 안정감을 되찾으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2011년 시즌 전체(볼티모어+텍사스) 성적은 65경기 등판, 2승 3패, 평균자책점 2.35를 기록했으며, 구원 투수 중 리그 1위의 WHIP(0.72), 공동 5위의 탈삼진율(11.77), 공동 2위의 볼넷 허용률(1.25)이라는 뛰어난 세부 지표를 남겼다.[7]
그러나 처음 경험한 포스트 시즌에서는 부진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는 에번 롱고리아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고,[7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3차전 미겔 카브레라,[76] 5차전 라이언 레이번에게 연달아 홈런을 맞으며 포스트 시즌 역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77] 결국 팀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우에하라는 부진으로 인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 시리즈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78]
2012년 1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으나, 우에하라는 계약에 포함된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여 다음 날 이적을 거부했고, 트레이드는 무산되었다.[79] 그는 베스팅 옵션을 통해 레인저스에 잔류했다.
2012년 시즌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며 20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11, WHIP 0.70을 기록했다. 특히 5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까지 29경기 연속 무볼넷 행진을 이어가며 구단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6월 14일 오른쪽 광배근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DL)에 올랐고,[80] 재활 중 통증이 재발하여 8월 26일에야 복귀했다. 복귀 후 시즌 마지막까지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후반기 17경기에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23, WHIP 0.54로 호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 등판, 36이닝 소화, 평균자책점 1.75를 기록했다. 특히 K/BB(탈삼진/볼넷 비율)는 14.33으로, 1900년 이후 연간 35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 중 메이저 리그 역대 3위에 해당하는 뛰어난 기록이었다.[81] 전년도 11개였던 피홈런도 4개로 줄이며 '한 방'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패배하여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했는데, 우에하라는 이 경기 8회에 등판하여 상대 클린업 트리오를 삼진 3개로 처리하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82] 시즌 종료 후 우에하라는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다.
3. 3.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012년 오프 시즌, 여러 MLB 구단이 꾸준한 성적을 보여준 우에하라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12월 6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425만달러에 인센티브가 포함된 1년 계약(2년차는 55경기 등판 시 자동 연장되는 연봉 425만달러의 구단 옵션)에 합의했고[83], 18일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84] 우에하라는 레드삭스가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팀이라고 느꼈고, 클럽하우스에 비데가 설치된 점도 계약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85][86] 당시 레드삭스 단장 벤 체링턴은 처음에는 영입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으나, 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들과 빌 제임스의 강력한 추천으로 영입을 결정했다.[87][88][89] 이 계약은 훗날 "레드삭스가 기적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90]
2013년정규 시즌 시작과 함께 트레이드마크였던 구레나룻을 면도했다.[91] 시즌 초반 8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전년도부터 이어진 연속 무실점 기록을 22경기로 늘렸다.[92][93] 6월 9일 에인절스전에서는 MLB 이적 후 183경기, 920타자 만에 처음으로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94] 시즌 초 마무리 투수였던 조엘 핸라한과 앤드류 베일리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타자와 준이치도 부진하자, 6월 21일부터 우에하라가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9][95] 6월 26일 첫 세이브를 올렸고, 다음 날에는 NPB/MLB 통산 50세이브를 달성했다.[96] 전반기 44경기에서 2승 8세이브, ERA 1.70, WHIP 0.76을 기록하며 MLB 올스타전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97] 8월 13일에는 시즌 55번째 등판으로 다음 해 계약 옵션이 자동 실행되었다.[98]
7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일본인 투수 최장인 27경기 연속 무실점, 30.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이 기간 동안 37타자 연속 아웃이라는 구단 신기록(MLB 역대 구원 투수 2위)을 세웠다.[10][11][100][101][102][103] 9월 17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안타와 희생플라이로 실점하며 연속 기록은 마감되었지만, 9월 2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 20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6년 만의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9월 27일에는 구원 투수로는 구단 최초로 시즌 100탈삼진을 달성했다.[104]
정규 시즌에는 73경기에 등판[105]하여 4승 1패 21세이브 13홀드, ERA 1.09, WHIP 0.57 (50이닝 이상 투수 중 역대 최고 기록), 74.1이닝 101탈삼진(K/9 12.2, K% 38.1%), xFIP 2.08을 기록했다. Fangraphs는 그를 2013년 WAR 기준 최고의 구원 투수로 평가했으며[12], 사이 영 상 투표에서도 7위를 차지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3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를 기록했지만, 3차전에서는 호세 로바톤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기도 했다.[107][108]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하여 5.1이닝 동안 1승 3세이브, 4피안타 무실점 9탈삼진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투구로 ALCS MVP에 선정되었다. 이는 일본인 최초이자 구원 투수로는 마리아노 리베라(2003년) 이후 MLB 역사상 세 번째 수상이었다.[13][109]
월드 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맞붙었다. 3차전에서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주루 방해 끝내기 패배를 당하기도 했으나, 4차전에서는 9회말 2사 1루에서 콜튼 웡을 견제사로 잡아내며 경기를 끝냈다. 이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견제사 마무리이자 일본인 최초의 월드 시리즈 세이브였다. 5차전에서도 세이브를 추가하며 포스트시즌 통산 7세이브로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존 웨텔랜드, 롭 넨, 트로이 퍼시벌, 브래드 릿지 등)을 세웠다.[14] 6차전에서는 팀이 6-1로 앞선 9회에 등판하여 마지막 타자 맷 카펜터를 삼진으로 잡고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 일본인 최초의 월드 시리즈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우승 세리머니에서는 데이비드 오티스가 우에하라를 어깨에 태우고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15] 이 해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총 86경기에 등판하며 MLB 전체 투수 중 최다 등판을 기록했다.
2014년시즌 초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전반기 42경기에서 18세이브, ERA 1.65, WHIP 0.76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7월 9일, 부상당한 뉴욕 양키스의 다나카 마사히로를 대신해 생애 첫 MLB 올스타전에 출전했다.[110] 올스타전에서는 6회 2사 후 등판해 데빈 메소라코를 삼진으로 처리했다.[111] 하지만 후반기 들어 부진에 빠졌고, 특히 8월 중순 이후 6경기에서 10실점하며 난조를 보이다 9월 5일 마무리 자리에서 물러났다.[16][112] 시즌 최종 64경기에 등판하여 6승 5패 26세이브, ERA 2.52, 64.1이닝 80탈삼진, WHIP 0.92를 남겼다. 시즌 종료 후인 10월 30일, 레드삭스와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17] 팀은 71승 91패로 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5년다시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4월 3일 부상자 명단에 올라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113] 4월 14일 복귀하여 시즌 첫 세이브를 올렸고, 5월 10일에는 NPB/MLB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다.[114] 그러나 8월 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원정 경기에서 이안 킨슬러의 타구에 오른쪽 손목을 맞아 비분리형 요골 원위단 골절(non-displaced distal radius fracture) 진단을 받고 시즌 아웃되었다.[115][116] 부상 전까지 43경기에서 2승 4패 25세이브, ERA 2.23, 40.1이닝 47탈삼진을 기록 중이었다.[18] 레드삭스는 시즌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크레이그 킴브렐을 영입했고, 이로 인해 우에하라는 다음 시즌 셋업맨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었다.[117]
2016년예상대로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7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오른쪽 가슴 근육 염좌(pectoral strain) 부상을 당해 다음 날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8] 9월 5일 복귀하여[119] 이후 11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120][121] 최종적으로 50경기에 등판하여 2승 3패 7세이브 18홀드, ERA 3.45, 47이닝 63탈삼진을 기록했다. 팀은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ALDS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3연패로 탈락했다. 우에하라는 이 시리즈에서 2경기에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19][122]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다.
3. 4. 시카고 컵스 시절

2016년 12월 14일, 시카고 컵스와 600만달러 규모의 1년 계약에 합의했다.[123] 계약 당시 다음 시즌 오프에 메이저 리그에서의 오퍼가 없으면 은퇴하겠다고 발언했으나,[124]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복귀 시 "경솔한 발언을 했다"고 언급했다.[125]
2017년 시즌 개막전인 4월 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시즌 첫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126] 시즌 종료 후인 11월 2일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127]
4. 요미우리 자이언츠 복귀
2017년 시즌 종료 후 MLB에서 계약 제의가 없으면 은퇴할 가능성도 시사했으나[128], 2018년이 되자 일본 구단 복귀 의사를 밝혔다. 2018년 3월 9일, 10년 만에 친정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1년 계약을 맺으며 NPB 무대로 돌아왔다.[21][22] 같은 날 입단 기자회견이 열렸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등번호 19번은 당시 스가노 도모유키가 사용하고 있었기에 비어있던 번호 중 본인이 직접 '''11'''번을 선택했다. 추정 연봉은 2억엔에 성과급이 더해지는 조건이었다.[129][130] 같은 날 지배하 선수로 등록되었다.[131]
2018년 3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008년 10월 5일 주니치 드래건스전 이후 3,464일 만에 NPB 공식전에 등판했다. 이 경기에서 1이닝을 삼자범퇴 무실점으로 막아 공식전 3,535일 만에 홀드를 기록했다.[132] 그러나 시범 경기 단계에서 입단하여 컨디션 조절이 덜 된 탓인지, 4월 1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과 4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연달아 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같은 해 마이나비 올스타전 2018에는 중간 계투 투수 부문 팬 투표로 선출되어 11년 만에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3][133] 제2전(리브 워크 후지사키다이 구장)의 6회에 등판하여 43세 3개월의 나이로 올스타전 마운드에 올라, 2005년 당시 팀 동료였던 구도 기미야스가 세운 올스타전 최고령 등판 기록(42세 2개월)을 경신했다.[134] 7월 2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홀드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일본인 최초로 일미 통산 100승 100세이브 10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24][135] 하지만 여름에 들어서면서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7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연장 11회에 등판했으나 야마다 데쓰토에게 결승 적시타를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136] 결국 다음 날인 27일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137] 이후 컨디션을 조절한 뒤 8월 25일에 다시 1군으로 승격되어 시즌 종료까지 1군에 동행했다. 일본 복귀 첫해 성적은 36경기에 등판하여 5패 14홀드,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다.[26]
시즌 종료 후인 10월 23일,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138] 수술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10월 29일에 일단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지만[139], 12월 14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재계약했음을 밝혔다.[25]
2019년부터는 스가노 도모유키가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함에 따라, 메이저 리그 이적 전에 사용했던 등번호 '''19'''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또한,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이었던 이와세 히토키가 2018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동갑내기인 지바 롯데 마린스의 후쿠우라 가즈야와 함께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140] 개막을 2군에서 맞이한 후 1군 복귀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2019년 5월 20일 시즌 도중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141] 같은 날 NPB에서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으며[142], 이는 일본 프로 야구 12개 구단에서 레이와 시대 최초의 임의 은퇴 선수였다. 시즌 중 은퇴라는 이례적인 결정에 구단에서는 만류했지만, 우에하라는 "2군에서 막지 못하는 수준이면 1군에서는 막을 수 없다. 그만둘 거면 구단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젊은 투수들의 등판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며 은퇴를 결정했다.[143]
5. 국가대표 경력
오사카 체육대학 재학 중이던 1997년,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제13회 IBAF 인터컨티넨탈컵에 참가했다. 결승전에서 당시 국제 대회 151연승 중이던 쿠바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5와 1/3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쿠바의 연승 기록을 151에서 멈추는 데 기여했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하여 중국전에 선발 등판,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151] 이듬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2경기에 등판, 1승 0패 평균자책점 2.08을 기록하며[152]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30]
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으로 선출되었다.[30] 2차 리그 미국전에서는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고, 준결승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7이닝 동안 사사구 없이 무실점으로 막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153] 이 대회에서 총 3경기에 등판하여 2승을 거두었고, 대회 최다인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일본의 첫 WBC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30][153] 이 승리로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한 국제 대회 통산 성적은 21경기 12승 무패가 되었다.[30]
2007년 12월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아시아 지역 예선 겸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 대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30]
2008년 시즌 NPB에서의 부진으로 대표팀 발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의 직접적인 요청으로 발탁되어 마무리 투수 겸 투수 주장을 맡았다.[154]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는 중화 타이베이와의 첫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고,[30] 캐나다전에서는 1-0 승리를 지키며 올림픽 첫 세이브를 올렸다. 총 2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0.00, 1세이브를 기록했으나[155], 일본 대표팀은 4위에 머물렀다.[30]
베이징 올림픽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156] 이후 2013년 제3회 WBC[157]와 2017년 제4회 WBC[158] 참가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당시 소속팀 시카고 컵스의 반대로 출전이 무산되었다.[159]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는 불참했다.[30]
우에하라는 대학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통산 25번의 국제 경기에 등판하여 12승 무패 2세이브를 기록, "국제 경기 무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30][160]
6. 은퇴 후
201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9경기에 출전한 후, 우에하라는 44세의 나이로 프로 야구 은퇴를 발표했다.[27][28] 우에하라는 MLB와 NPB를 통틀어 총 748경기에 출전했으며, 통산 평균자책점 2.93, 1,989 탈삼진, 134승, 12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26] 그는 MLB에서 9년간 활약하며 자격 요건을 갖춘 구원 투수 중 삼진/볼넷 비율에서 통산 7.33의 K/BB를 기록, 역대 1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9]
선수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4차례의 센트럴 리그 우승, 2차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MLB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에서는 4차례의 지구 우승, 2차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 1차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개인적으로는 NPB에서 총 16개의 타이틀(다승왕 2회, 최우수 방어율 2회, 탈삼진왕 2회, 최고 승률 3회)과 주요 표창(사와무라 에이지상 2회, 신인왕, 베스트 나인 2회, 골든 글러브상 2회)을 획득했다.[33]
전 메이저 리거로서 2013년에는 MLB에서 일본인 최초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및 월드 시리즈 우승 투수가 되었다.[34] NPB 시대에는 20세기 마지막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과 20세기 마지막 투수 삼관왕을 달성했으며, 최고 승률을 3회 획득(센트럴 리그 최다 타이기록)했다. 또한, 미일 통산 100승 100세이브 100홀드를 달성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이다. 일본 대표로서는 WBC에서 1회 우승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7. 선수로서의 특징
기본적으로 포심과 포크볼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에는 여기에 컷볼을 섞어 던지기도 했으나[162], 메이저 리그 이적 후에는 주로 포심과 포크볼 두 구종에 집중했다[162]。
구종 | 투구 비율 | 평균구속 mph (kph) | 수평 움직임 in (cm) | 수직 움직임 in (cm) |
---|---|---|---|---|
포심 | 63 % | 87 (140) | -7 (-18) | 11 (27) |
스플리터 | 34 % | 79 (128) | -8 (-21) | 4 (11) |
커터 | 3 % | 82 (132) | -0 (-1) | 5 (14) |
우에하라의 가장 큰 특징은 뛰어난 제구력이다. 탈삼진을 많이 잡는 반면 볼넷을 매우 적게 내주는 유형의 투수로, NPB 10년간 통산 탈삼진율은 7.99였고(주로 마무리로 뛴 2007년에는 9.58), MLB 8년간 통산 탈삼진율은 10.7(2013년에는 개인 최고인 12.2)을 기록했다[163][164]。 제구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K/BB(탈삼진/볼넷 비율)는 NPB 통산 6.68로, 10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역대 1위에 해당한다(2위 츠치야시 마사유키 4.61, 3위 다나카 마사히로 4.50)[165][166]。 MLB에서도 2014년까지 통산 8.96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준의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NPB 10년간 1549이닝을 던지면서 내준 볼넷은 단 206개에 불과하며, 통산 볼넷 허용률은 1.20이다. 이는 '정밀 기계'라 불렸던 키타벳푸 마나부(1.90)나 코야마 마사아키(1.80) 등 과거 명투수들의 기록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또한, 포크볼은 제구가 어려워 폭투로 이어지기 쉬운 구종임에도 불구하고, 우에하라는 폭투가 매우 적었다[167]。 2018년까지 20년간 기록한 폭투는 단 19개(NPB 11년 10개, MLB 9년 9개)에 그쳤다.
뜬공 비율이 높은 플라이볼 투수 유형으로 분류되며[168][169][170], 이 때문에 피홈런이 다소 많은 경향이 있었다(NPB 통산 피홈런율 1.1[171][172], MLB 통산 피홈런율 1.12[173][174]). 하지만 내야 뜬공으로 아웃카운트를 잡는 비율은 높아, 2013년에는 메이저 리그 전체 1위(23.0%)를 기록하기도 했다[175]。
투구 간격이 매우 짧고 빠른 템포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가졌다[177]。 요미우리 시절에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완투승을 거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는 "타자 1명당 5구, 1이닝 15구면 다음날 피로도 덜 남는다"는 그의 생각과도 관련이 있다。
오리올스 시절 팀 동료였던 포수 맷 위터스는 우에하라에 대해 "원하는 곳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던져주기 때문에 공을 받는 것이 즐거운 투수였다"고 평가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투수 코치였던 돈 쿠퍼 역시 "폼에 속는 타자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에하라가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는 비결은 스플리터(포크볼) 활용 능력과 뛰어난 커맨드(제구력) 덕분이다"라며 그의 제구력을 높이 평가했다。
요미우리 시절 성적이 부진했던 2000-2001년 무렵, 선배 투수 쿠도 키미야스에게 구종 추가에 대해 상담하자 "구종을 늘리기보다 지금 가진 공을 더 정확하게 연마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조언을 들은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고 우에하라 본인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후 그는 기본적으로 직구와 포크볼 두 구종에 집중하며 투구 기술을 갈고 닦는 데 전념했다[176]。
8.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MLB: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2013년)
- 대학 시절: 인터컨티넨탈컵 최우수 투수상 (1997년)
8. 1. NPB
오사카 체육 대학 졸업 후, 199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순위(역지명)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당시 메이저 리그의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영입 경쟁이 있었으나, 일본 프로야구를 선택했다. 등번호는 재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19'''번을 달았다.[41][49]===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
==== 1999년 ~ 2002년 ====
프로 1년차인 1999년, 매주 일요일에 등판하는 로테이션으로 'サンデー上原|선데이 우에하라일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반기에만 신인으로서는 37년 만에 12승을 거두었고, 5월 20일부터 9월 21일까지 15연승을 기록하며 역대 4위이자 신인 투수 역대 1위 기록(1966년 호리우치 쓰네오의 13연승 경신)을 세웠다. 최종적으로 20승 4패를 기록하며, 1990년 사이토 마사키 이후 9년 만이자 신인 투수로는 기다 이사무 이후 19년 만에 20승 투수가 되었다. 최다 승리, 최고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최고 승률 등 투수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하며 프로 야구 역사상 10번째, 신인으로서는 3번째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신인왕과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자신을 잡초에 비유한 '잡초혼'은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리벤지'와 함께 그 해 유행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팀 동료 마쓰이 히데키의 홈런왕 타이틀 경쟁을 위해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로베르토 페타지니에게 고의사구를 던지라는 지시에 따랐으나, 마운드 위에서 분함을 표출하기도 했다.[2]
2000년에는 7월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으로 잠시 이탈하며 9승 7패에 그쳤다. 포스트 시즌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상대로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자신의 일본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고,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1년에는 4월 12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후반기에는 오른쪽 무릎 문제 등 부상으로 힘든 시즌을 보냈다. 2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4.02로 개인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2002년에는 반등하여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17승 5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최다승 타이틀과 함께 두 번째 사와무라 에이지상,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3]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선발 등판하여 12탈삼진 1실점 완투승을 거두는 등 팀의 4연승 우승에 기여하며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시즌 후 열린 미일 야구 대회에서는 배리 본즈를 상대로 3타석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 2003년 ~ 2008년 ====
2003년에는 7월 20일부터 8월 29일까지 7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는 등 활약했지만, 이가와 게이(20승)에게 밀려 다승왕 타이틀은 놓쳤다. 그래도 2년 연속 200이닝 이상 투구하며 16승 5패,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일본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어 평균자책점 0.50의 호투로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참가와 경미한 부상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음에도 시즌 13승 5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통산 두 번째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9월 14일에는 전직 모델 야마자키 미호와 결혼했다.
2005년은 시즌 내내 부진하며 9승 12패를 기록,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패전 수가 승리 수를 넘는 힘든 시즌을 보냈다.
2006년에는 정규 시즌 개막 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일본 대표팀 에이스로 참가하여 3경기 2승을 거두며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준결승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이끌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다인 7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 5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두었고, 8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191경기, 드래프트제 도입 이후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타이 기록). 그러나 시즌 전반적으로 컨디션 난조와 타선 지원 부족으로 8승 9패에 그치며 2년 연속 한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시즌 전 부상과 기존 마무리 투수 도요다 기요시의 부진이 겹치면서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5월 2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8월에는 구단 최초 4일 연속 세이브, 월간 11세이브(구단 신기록 및 NPB 타이 기록)를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4승 3패 32세이브(구단 신기록),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프로 통산 20승과 30세이브를 모두 기록한 역대 두 번째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주니치를 상대로 2, 3차전에 등판했으나, 이병규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부진하며 팀의 탈락을 막지 못했고, 경기 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했다.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고, 이전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 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었기에, FA 자격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떠났다.[4]
=== NPB 수상 내역 ===
타이틀 | 횟수 | 연도 |
---|---|---|
다승왕 | 2회 | 1999년, 2002년 |
최우수 평균 자책점 | 2회 | 1999년, 2004년 |
최다 탈삼진 | 2회 | 1999년, 2003년 |
최고 승률 | 3회 | 1999년, 2002년, 2004년 |
표창 | 횟수 | 연도 / 비고 |
신인왕 | 1회 | 1999년 |
최우수 투수 | 2회 | 1999년, 2002년 |
사와무라 에이지상 | 2회 | 1999년, 2002년 |
베스트 나인 | 2회 | 1999년, 2002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 | 1999년, 2003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1회 | 2002년 |
월간 MVP | 4회 | 1999년 8월, 2002년 7월, 2003년 8월, 2004년 9월 |
스피드업상 | 2회 | 1999년, 2004년 |
최우수 배터리상 | 1회 | 2002년[232] |
최우수 배터리상(특별상) | 1회 | 1999년 |
올스타전 우수 선수상 | 2회 | 1999년, 2001년 |
산요 올스타 신인상 | 1회 | 1999년 |
산요상(올스타전) | 1회 | 2002년 |
최우수 JCB·MEP상 | 1회 | 1999년 |
IBM 플레이어오브더이어상 | 1회 | 1999년 |
한일 프로 야구 슈퍼게임 1차전 우수 선수상 | 1회 | 1999년 |
도쿄 돔 MVP | 2회 | 1999년, 2007년 |
8. 2. MLB
2008년 11월 14일, FA를 선언하며 메이저 리그 진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9년 1월 1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간 1000만달러(인센티브 포함 시 최대 1600만달러)에 정식 계약을 맺으며 팀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등번호는 요미우리 시절과 같은 '''19'''번을 사용했다.2009 시즌은 제러미 거스리에 이어 2선발로 시작했다.[5] 4월 8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러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두 번째 등판에서도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9월 10일 시즌 아웃되었고, 12번의 선발 등판에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4.05, 66⅔이닝 동안 4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2010년에는 불펜의 셋업맨으로 시작하여 43경기에 등판, 1승 2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86, 44이닝 동안 5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11 시즌 전반기에는 1승 1패, 평균자책점 1.72, 47이닝 동안 62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11년 7월 30일, 크리스 데이비스와 토미 헌터를 상대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이적으로 고등학교 동창인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다시 팀 동료가 되었다.[6] 등번호는 계속해서 '''19'''번을 사용했다.
오리올스에서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레인저스 이적 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8월에는 1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6.52, WHIP 1.24로 부진했으나, 8월 31일 55경기 등판을 달성하며 다음 시즌 계약 옵션을 갱신했다. 9월에는 10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23, WHIP 0.23으로 회복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2011 시즌 통산(오리올스+레인저스) 성적은 65경기 등판, 2승 3패, 평균자책점 2.35, 65이닝 동안 85탈삼진이었다. 구원 투수 중 리그 1위의 WHIP(0.72), 공동 5위의 탈삼진률(11.77), 공동 2위의 볼넷율(1.25)을 기록했다.[7]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에번 롱고리아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서는 미겔 카브레라에게, 5차전에서는 라이언 라번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는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었다. 팀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우에하라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포스트시즌 성적은 1⅓이닝 동안 3개의 홈런을 허용하며 평균자책점 33.75를 기록했다.
2012년 1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었으나, 우에하라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시즌 중 5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에서 볼넷을 내줄 때까지 29경기 연속 무볼넷 기록을 이어갔다(볼티모어 시절부터 이어진 기록으로, 두 팀에서 연속 무볼넷 구단 기록을 경신). 6월 14일까지 20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11, WHIP 0.70으로 호투했지만, 오른쪽 등 근육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8월 26일에 복귀하여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1.75, 36이닝 투구였다.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2012년 12월 6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425만달러 계약(2년차 구단 옵션 포함)에 합의했고,[8][83] 18일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84] 레드삭스의 세이버메트릭스 스태프와 고문 빌 제임스의 강력한 추천이 영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88][89]
2013 시즌, 우에하라는 트레이드마크였던 구레나룻을 깎고 시즌을 시작했다.[91] 처음에는 셋업맨 역할을 맡았으나,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앤드류 베일리와 조엘 핸라한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타자와 준이치가 부진하자 6월 21일부터 팀의 마무리 투수로 전환되었다.[9][95]
정규 시즌 동안 우에하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73경기에 등판하여[105] 4승 1패 21세이브 13홀드, 평균자책점 1.09를 기록했으며, 특히 WHIP 0.57은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74⅓이닝 동안 101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레드삭스 구원 투수 최초로 시즌 100탈삼진을 달성했고,[104] 탈삼진율은 38.1%에 달했다. 팬그래프스 WAR 기준으로 2013년 최고의 구원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12] 7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37타자 연속 아웃 기록을 세우며 종전 팀 기록(32)을 넘어섰다.[10][11]
2013 ALCS에서는 5경기에 등판하여 1승 3세이브, 5⅓이닝 동안 9탈삼진 무실점의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ALCS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13] 이는 일본인 선수 최초의 수상이었다. 2013 월드 시리즈에서는 4차전에서 콜튼 웡을 견제사로 잡아내며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견제사 끝내기 세이브를 기록했고, 5차전에서도 세이브를 추가하며 포스트시즌 통산 7세이브로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을 세웠다.[14] 6차전에서는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일본인 최초의 월드 시리즈 우승 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 데이비드 오티스가 우에하라를 어깨에 들쳐 업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2014년 7월 9일, 부상당한 다나카 마사히로를 대신하여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110] 시즌 후반기에 부진하여 9월 5일 마무리 투수 자리에서 물러났으나,[16]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5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52, 64⅓이닝 80탈삼진을 기록했다. 10월 30일 레드삭스와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17]
2015 시즌 다시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8월 7일 타구에 오른쪽 손목을 맞아 골절상을 입고 시즌 아웃되었다.[115][116] 부상 전까지 2승 4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40⅓이닝 47탈삼진을 기록했다.[117]
2016년에는 크레이그 킴브렐의 영입으로 주로 셋업맨 역할을 수행했다. 시즌 중 가슴 근육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으나,[118] 복귀 후 11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121] 최종 성적은 50경기 등판, 2승 3패 7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45, 47이닝 63탈삼진이었다. ALDS에서는 2경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스윕 패배를 당했다.[19][122] 시즌 후 FA가 되었다.
2016년 12월 14일, 시카고 컵스와 1년 6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20] 2017 시즌 후 다시 FA가 되었다.
8. 3. 기타
전 메이저 리거로, 2013년에는 MLB에서 일본인 최초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및 월드 시리즈 우승 투수가 되었다[34]。NPB 시대에는 20세기 마지막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과 20세기 마지막 투수 삼관왕을 달성했다. 최고 승률을 3회 획득(센트럴 리그 최다 타이기록)했다. 일미 통산 100승 100세이브 100홀드를 달성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이다. 일본 대표에서는 WBC에서 1회 우승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매니지먼트는 스포츠 벅스이다[35]。친형은 기타가와 휴텍 대표 이사인 기타가와 타카아키이다[36]。
수상 내역 | 수상 연도/시기 |
---|---|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호치 신문사) | 1999년 |
마이니치 스포츠인 상 - 팬상 | 1999년 |
마이니치 스포츠인 상 - 감동상 | 1999년 |
아사히 슈퍼 드라이 THE BEST PLAYER | 1999년 6월, 7월, 9월 (3회) |
아사히 슈퍼 드라이 연간 베스트 플레이어 | 1999년 |
2004 GIANTS 월간 MIP상 | 2004년 9월 |
넘버 MVP상 | 2013년 |
테이크백이 작고 팔의 스윙이 빠른 것이 특징이며, 약간 토네이도 투구 폼과 비슷한 노 와인드업의 스리쿼터로 던진다. 이 투구 폼은 매우 부드러워 겉으로는 그다지 특징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투구 동작 전반부는 팔이 몸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고 공을 쥐고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아 테이크백에서 공을 놓을 때까지의 시간이 짧다. 이 때문에 메이저 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공의 출처를 보기 어렵다"고 말하며, 속구를 실제 구속 이상으로 느끼게 하는 "Deceptive|디셉티브영어"(환혹적인) 투구 폼이라고 불린다. 동료 외야수 다니엘 나바는 "판단할 시간이 없다", "한가운데 속구가 던져지고 나서 절반을 통과할 때까지 알 수 없다"고 말했으며, 포수인 데이비드 로스조차 "던지는 순간, 볼이 스트라이크인지 아닌지는 높게 벗어났을 때 외에는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178]. 메이저 리그 진출 후 근육 파열로 고생했을 때, MLB의 딱딱하고 경사진 마운드에 맞춰 제이크 피비를 참고하여 마운드에서 점프하는 듯한 투구 폼으로 변경했다. 이를 통해 허벅지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했다[179]. 주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과 포크볼이며, 두 구종을 거의 같은 비율로 던진다. 절묘한 제구력으로 두 구종을 똑같이 던질 수 있다는 점이 우에하라의 뛰어난 장점이다. 상대했던 뉴욕 양키스의 라이얼 오버베이는 "속구뿐만 아니라 스플리터(포크볼)도 양쪽 사이드로 던진다. 속구와 스플리터가 비슷한 궤적을 그리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스카우트들은 "스플리터가 항상 열쇠"이며, 제구력이 우에하라의 무기라고 분석했다.
입단 초기부터 메이저 리그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어왔으며, 2004년 오프 시즌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2006년 메이저 리그 이적을 소속 구단에 요청했다. 당시 연봉 3.35억엔에서 8500만엔 삭감 및 FA 권리 취득까지 남은 4년치 위약금 지불까지 제안했지만[219], 구단 수뇌부는 포스팅 시스템 이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제멋대로"라는[220] 비판을 받으며 구단 프런트와 감정적인 대립으로 번졌고, 해당 시즌 계약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기도 했다. 포스팅 이적이 거부된 해부터 다음 해까지 부상 등으로 성적이 하락하면서 언론의 비판도 거세졌다. 결국 메이저 리그 이적은 5년 뒤인 2009년 해외 FA 권리를 취득한 후에야 이루어졌으며, 당시 나이는 34세였다. 우에하라는 현재도 '포스팅 12구단 통일 룰'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스가노 토모유키가 2021년에 포스팅 신청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잔류했을 때, 우에하라는 "나 자신이 과거 자이언츠에 포스팅을 호소했을 때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만약 인정해줬다면 어떤 구단의 어떤 조건의 오퍼에도 응할 각오였다"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221]。
9. 개인 기록
'''NPB'''
- 두 자릿수 연승 : 2회(1999년, 2002년)
- 매이닝 탈삼진 : 2회(2000년 5월 6일, 2005년 6월 30일 모두 야쿠르트 전)
- 일본 시리즈 1이닝 최다 탈삼진 : 3개(2002년, 일본 시리즈 타이 기록)
- 교류전 1경기 최다 탈삼진 : 14개(2006년 6월 18일 라쿠텐 전, 교류전 타이 기록)
- 100승 도달 경기수 : 191경기(드래프트제 도입 후 최고 속도이며, 역대 4위 타이)[233]
- 투수 부문 4개 타이틀 복수 획득자(역대 2번째)
- 입단 6년차 80승 달성(역대 6번째)
- 올스타전 신인 승리 투수 : 1999년(역대 7번째)[233]
- 올스타전 신인 선발 승리투수 : 1999년(역대 3번째)[233]
'''MLB'''
- 한 자리수 볼넷 100탈삼진(2013년, MLB 사상 최초)[234]
- 시즌 WHIP : 0.565(2013년, 구원 투수 역대 1위(40 이닝 이상))[234]
9. 1. NPB
일본 프로 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98년 NPB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오사카 체육대학 출신의 우에하라를 역지명으로 지명했다. 대학 시절 한신 대학 리그에서 통산 36승 4패, 13완봉(리그 기록)을 기록했고, 1997년 인터컨티넨탈컵 결승에서는 쿠바를 상대로 승리 투수가 되는 등 국제 대회에서도 활약하며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함께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다. MLB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간의 영입 경쟁 끝에 요미우리를 선택했으며, 등번호는 재수 시절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19'''번을 달았다.[41][49]프로 1년차인 1999년, 주로 일요일에 선발 등판하여 ‘'''선데이 우에하라'''’(サンデー上原|산데 우에하라일본어)로 불렸다. 5월 20일부터 9월 21일까지 신인 투수 역대 최다인 15연승을 기록하는 등[233] 최종 20승 4패를 거두며 1980년 기다 이사무 이후 19년 만의 신인 20승 투수가 되었다. 최다 승리, 최고 평균자책점(2.09), 최다 탈삼진(179개), 최고 승률(.833) 등 투수 주요 4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며 프로야구 역사상 10번째이자 신인으로는 3번째로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신인왕과 사와무라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자신을 빗댄 ‘'''잡초혼'''’(雑草魂|잣소다마시일본어)은 그해 신어·유행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팀 동료 마쓰이 히데키의 홈런왕 경쟁을 위해 상대 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에게 고의사구를 내주라는 지시에 따르면서 마운드에서 분함을 표출하기도 했다.[2]
2000년에는 7월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이탈하며 9승 7패에 그쳤다. 포스트시즌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상대로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일본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고,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1년에는 4월 12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을 당했고, 후반기에는 오른쪽 무릎 문제까지 겹치며 10승을 올렸지만 평균자책점은 개인 최저인 4.02를 기록했다.
2002년에는 17승 5패, 평균자책점 2.60의 성적으로 최다승 타이틀과 함께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와무라상,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3]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12탈삼진 1실점 완투승을 거두는 등 팀의 4연승 우승에 기여하며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시즌 후 열린 미일 야구에서는 배리 본즈를 상대로 3타석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에는 7월 20일부터 8월 29일까지 7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는 등 16승 5패, 2년 연속 200이닝 이상 투구(207.1이닝), 194탈삼진(탈삼진왕)을 기록하며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20승을 거둔 이가와 게이에게 다승왕 타이틀은 내주었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평균자책점 0.50의 호투로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참가와 경미한 부상으로 이탈 기간이 있었음에도 시즌 13승 5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통산 두 번째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9월 14일에는 전직 모델 야마자키 미호와 결혼했다.
2005년에는 시즌 내내 부진하며 9승 12패를 기록,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패전 수가 승리 수를 넘어서는 힘든 시즌을 보냈다.
2006년에는 시즌 개막 전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3경기에 등판해 2승을 거두며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5년 만에 개막전 승리 투수가 되었고, 8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드래프트 제도 도입 이후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함께 가장 빠른 기록인 191경기 만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으로는 컨디션 난조와 타선 지원 부족으로 8승 9패에 그치며 2년 연속 한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시즌 직전 부상과 기존 마무리 투수 도요다 기요시의 부진이 겹치면서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다. 5월 2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8월에는 구단 최초 4일 연속 세이브, 월간 11세이브(프로야구 타이 기록)를 달성하는 등 최종 32세이브(구단 신기록),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MVP 투표 2위에 올랐다. 이로써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20승과 30세이브를 모두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부진했는데, 2차전과 3차전에 등판했으나 이병규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는 등 추가점을 내주며 팀의 시리즈 탈락을 막지 못했다. 경기 종료 후 벤치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하여 6승 5패를 기록했다.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어 MLB 진출을 선언했다. 이전부터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MLB 진출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FA 자격을 통해 꿈을 이루게 되었다.[4]
2018년, 10년 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복귀하여[21][22] 1년 계약을 맺었다. 그해 올스타전에 선출되었고,[23] 7월 20일에는 후지카와 규지에 이어 NPB/MLB 통산 100승-100홀드-100세이브를 달성한 역대 두 번째 투수가 되었다.[24] 시즌 성적은 36경기 등판, 0승 5패 14홀드,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다. 12월 14일 자이언츠와 재계약했으나,[25] 2019년 시즌에는 9경기 등판에 그치며 5월 20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26]
NPB 통산 11시즌 동안 312경기에 등판하여 112승 67패 33세이브 23홀드, 평균자책점 3.02, 1400탈삼진을 기록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4차례의 센트럴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 주요 기록 ===
기록 | 달성일 | 상대팀 | 장소 | 비고 |
---|---|---|---|---|
첫 등판·첫 선발 | 1999년 4월 4일 | 한신 타이거스 | 도쿄 돔 | 6.2이닝 4실점 패전 |
첫 탈삼진 | 1999년 4월 4일 | 한신 타이거스 | 도쿄 돔 | 1회초 쓰보이 도모치카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 1999년 4월 13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도쿄 돔 | 7이닝 무실점 |
첫 완투 승리 | 1999년 5월 16일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도쿄 돔 | 9이닝 2실점 |
첫 완봉 승리 | 1999년 9월 14일 | 주니치 드래건스 | 나고야 돔 | |
첫 세이브 | 2007년 5월 2일 | 주니치 드래건스 | 나고야 돔 | 11회말 등판, 1이닝 무실점 |
첫 홀드 | 2007년 7월 12일 | 한신 타이거스 | 도쿄 돔 | 9회초 등판, 2이닝 무실점 |
통산 1000 투구 이닝 | 2004년 8월 3일 | 야쿠르트 스왈로스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역대 298번째 |
통산 1000 탈삼진 | 2005년 5월 31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삿포로 돔 | 역대 115번째 |
통산 100승 | 2006년 8월 25일 | 한신 타이거스 | 한신 고시엔 구장 | 6.2이닝 2실점 (역대 121번째, 191경기만에 달성 - 드래프트제 도입 후 최단 기간 타이) |
통산 1500 투구 이닝 | 2008년 7월 20일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역대 161번째 |
=== NPB 주요 기록 및 수상 ===
- 신인 최다 연승 : 15승 (1999년, NPB 기록)
- 월간 최다 세이브 : 11세이브 (2007년 8월, NPB 타이 기록)
- 투수 부문 4관왕 : 1회 (1999년) ※역대 10번째, 신인으로는 3번째
- 20승 & 30세이브 달성 ※역대 2번째
- 통산 K/BB : 6.88 (역대 1위)
- 올스타전 출장 : 8회 (1999년, 2001년 ~ 2005년, 2007년, 2018년)[233][23]
- 사와무라상 : 2회 (1999년, 2002년)
- 신인왕 (1999년)
- 다승왕 : 2회 (1999년, 2002년)
- 최우수 평균자책점 : 2회 (1999년, 2004년)
- 최다 탈삼진 : 2회 (1999년, 2003년)
- 최고 승률 : 3회 (1999년, 2002년, 2004년)
- 베스트 나인 : 2회 (1999년, 2002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 (1999년, 2003년)
=== 연도별 투수 성적 ===
연도 | 구단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 | WHIP |
---|---|---|---|---|---|---|---|---|---|---|---|---|---|---|---|---|---|---|---|---|---|---|---|---|---|
1999 | 요미우리 | 25 | 25 | 12 | 1 | 4 | 20 | 4 | 0 | -- | 0.833 | 769 | 197.2 | 153 | 12 | 24 | 3 | 4 | 179 | 3 | 0 | 49 | 46 | 2.09 | 0.90 |
2000 | 20 | 20 | 6 | 1 | 2 | 9 | 7 | 0 | -- | 0.563 | 519 | 131.0 | 112 | 20 | 22 | 1 | 1 | 126 | 1 | 0 | 53 | 52 | 3.57 | 1.02 | |
2001 | 24 | 22 | 4 | 1 | 1 | 10 | 7 | 0 | -- | 0.588 | 573 | 138.2 | 133 | 18 | 28 | 3 | 5 | 108 | 2 | 0 | 66 | 62 | 4.02 | 1.16 | |
2002 | 26 | 26 | 8 | 3 | 4 | 17 | 5 | 0 | -- | 0.773 | 808 | 204.0 | 173 | 18 | 23 | 3 | 6 | 182 | 2 | 0 | 65 | 59 | 2.60 | 0.96 | |
2003 | 27 | 27 | 11 | 1 | 3 | 16 | 5 | 0 | -- | 0.762 | 821 | 207.1 | 190 | 28 | 23 | 3 | 5 | 194 | 0 | 0 | 76 | 73 | 3.17 | 1.03 | |
2004 | 22 | 22 | 2 | 0 | 0 | 13 | 5 | 0 | -- | 0.722 | 637 | 163.0 | 135 | 24 | 23 | 0 | 5 | 153 | 1 | 0 | 54 | 47 | 2.60 | 0.97 | |
2005 | 27 | 27 | 6 | 2 | 4 | 9 | 12 | 0 | 0 | 0.429 | 747 | 187.1 | 164 | 24 | 22 | 0 | 0 | 145 | 0 | 1 | 73 | 69 | 3.31 | 0.99 | |
2006 | 24 | 24 | 5 | 0 | 3 | 8 | 9 | 0 | 0 | 0.471 | 673 | 168.1 | 157 | 24 | 21 | 3 | 1 | 151 | 0 | 1 | 67 | 60 | 3.21 | 1.06 | |
2007 | 55 | 0 | 0 | 0 | 0 | 4 | 3 | 32 | 4 | 0.571 | 237 | 62.0 | 47 | 4 | 4 | 1 | 1 | 66 | 1 | 0 | 12 | 12 | 1.74 | 0.82 | |
2008 | 26 | 12 | 2 | 0 | 0 | 6 | 5 | 1 | 5 | 0.545 | 370 | 89.2 | 90 | 11 | 16 | 1 | 0 | 72 | 0 | 0 | 43 | 38 | 3.81 | 1.18 | |
2018 | 36 | 0 | 0 | 0 | 0 | 0 | 5 | 0 | 14 | 0.000 | 139 | 34.2 | 32 | 5 | 5 | 0 | 2 | 24 | 0 | 0 | 14 | 14 | 3.63 | 1.07 | |
NPB 통산:11년 | 312 | 205 | 56 | 9 | 21 | 112 | 67 | 33 | 23 | 0.626 | 6293 | 1583.2 | 1386 | 188 | 211 | 18 | 30 | 1400 | 10 | 2 | 572 | 532 | 3.02 | 1.01 |
9. 2. MLB
2008년 11월 14일, FA를 선언하며 메이저 리그 진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SFX사의 마크 피퍼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
2009년 1월 1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간 1000만달러(인센티브 최고 600만달러)에 정식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오리올스 구단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으며, 등번호는 요미우리 시절과 같은 '''19'''번으로 결정했다.[5]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어 제레미 거스리에 이어 팀의 2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5] 4월 8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러 5이닝 1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두 번째 등판인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도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5월 23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탈수 증상으로 왼쪽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되었고, 27일 통증 재발로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다. 6월 23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강판되었고, 28일 정밀 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 힘줄 부분 파열이 확인되어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약 8주간 재활을 했으나 회복이 더뎌 9월 초 시즌 중 복귀를 포기했다. 결국 MLB 첫해는 1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 4패, 평균자책점 4.05, 66⅔이닝 48탈삼진의 성적으로 마감했다.
2010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 중 왼쪽 허벅지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5월에 불펜 투수로 복귀했으나, 6경기 등판 후 오른쪽 팔꿈치 통증 재발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6월 29일 복귀 후에는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고, 새로 부임한 벅 쇼월터 감독의 눈에 띄어 임시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8월 21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성적은 43경기 등판, 1승 2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86, 44이닝 55탈삼진을 기록했다. 또한 7월 1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부터 32경기 연속 무볼넷 기록을 세웠다 (MLB 역대 4위 타이). 오프 시즌에는 1년 계약(2년차 구단 옵션)을 맺었다.
2011년에는 케빈 그레그의 합류로 셋업맨 역할을 맡았다. 전반기 43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평균자책점 1.72, WHIP 0.70 (리그 구원 1위), 47이닝 62탈삼진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전년부터 이어온 연속 무볼넷 경기 수는 36경기(MLB 역대 3위)까지 늘어났다.
=== 텍사스 레인저스 ===
2011년 7월 30일, 크리스 데이비스와 토미 헌터를 상대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6] 이 트레이드로 고등학교 동창인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재회했다.[6] 등번호는 계속 '''19'''번을 사용했다. 오리올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레인저스 이적 후에는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에 적응하지 못하며 8월 1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52를 기록하는 등 부진했다. 하지만 이후 회복하여 9월에는 10경기 평균자책점 1.23, WHIP 0.23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8월 31일에는 55경기 등판 조건을 충족하여 다음 시즌 계약 옵션이 실행되었다.[74] 2011년 시즌 통산 성적은 65경기 등판, 2승 3패, 평균자책점 2.35, WHIP 0.72 (리그 구원 1위), 65이닝 85탈삼진을 기록했다.[7]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했다.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반 롱고리아에게 3점 홈런을 맞았고,[75]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미겔 카브레라에게,[76] 5차전에서는 라이언 레이번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로 3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77] 결국 월드 시리즈 로스터에서 제외되었고, 팀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패배했다.
2012년 1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으나, 우에하라는 블루제이스를 포함한 6개 구단에 대한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고, 다음 날 거부권을 행사하여 트레이드는 무산되었다.[79] 2012 시즌에는 5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에서 29경기 만에 볼넷을 내주기 전까지 구단 연속 무볼넷 기록을 경신했다. 시즌 초 2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1, WHIP 0.70으로 호투했지만, 6월 14일 오른쪽 광배근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80] 재활 중 통증이 재발하여 복귀가 늦어졌고, 8월 26일에야 복귀했다. 복귀 후 정규 시즌 마지막까지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체로는 37경기 등판, 36이닝 소화에 그쳤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1.75를 기록했다. 와일드카드 게임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오리올스의 중심 타선을 3자 연속 삼진으로 처리했지만 팀은 패배했다.[82]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 보스턴 레드삭스 ===
2012년 12월 18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425만달러 + 인센티브 계약을 체결했다.[84] 당시 레드삭스는 전년도 지구 최하위 팀이었지만, 우에하라는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팀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85]
2013년 시즌 초반에는 셋업맨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 투수였던 앤드류 베일리와 조엘 핸라한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6월 21일부터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게 되었다.[9][95] 마무리 전환 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7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37타자 연속 아웃을 기록하며 종전 팀 기록(32타자)을 경신했고,[10][11] 이는 바비 젱크스의 메이저 리그 구원 투수 기록(41타자)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102][103] 또한 이 기간 동안 27경기 연속 무실점, 30⅓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20일 블루제이스전에서 시즌 20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6년 만의 지구 우승을 확정 지었고, 오카지마 히데키에 이어 일본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9월 27일 오리올스전에서는 구원 투수로는 구단 최초로 시즌 100탈삼진을 달성했다.[104] 정규 시즌 성적은 73경기 등판, 4승 1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1.09, WHIP 0.565를 기록했다. 특히 WHIP 0.565는 40이닝 이상 투구한 구원 투수 중 메이저 리그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사이 영 상 투표에서도 7위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3경기에 등판하여 2세이브를 기록했지만, 3차전에서는 호세 로바톤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기도 했다.[108]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하여 1승 3세이브, 5⅓이닝 무실점 9탈삼진을 기록하며 ALCS MVP에 선정되었다. 일본인 선수 최초의 수상이었으며, 구원 투수로는 마리아노 리베라 (2003년) 이후 역대 세 번째였다.[109] 월드 시리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상대였으며, 양 리그 최고 승률 팀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3차전에서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주루 방해에 의한 끝내기 패배를 당하기도 했으나, 4차전에서는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대주자 콜튼 웡을 견제사로 잡아내며 경기를 끝냈다. 이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견제사 끝내기였으며, 우에하라에게는 일본인 최초의 월드 시리즈 세이브였다. 5차전에서도 세이브를 추가하며 포스트시즌 통산 7세이브로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을 세웠다.[14] (이 기록은 이후 그렉 홀랜드, 존 웨틀랜드, 롭 넨, 트로이 퍼시벌, 브래드 릿지와 타이를 이루었다.) 6차전에서는 팀이 6-1로 앞선 9회에 등판하여 마지막 타자 맷 카펜터를 삼진으로 잡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우에하라는 '''일본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 우승 투수'''가 되었다.[34] 우승 확정 후 데이비드 오티스가 우에하라를 어깨에 메고 기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2013년 포스트시즌 포함 총 86경기에 등판하여 메이저 리그 전체 투수 중 최다 등판을 기록했다.
2014년에도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하여 전반기에 18세이브,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7월 9일에는 부상으로 빠진 다나카 마사히로를 대신해 생애 첫 MLB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110] 올스타전에서는 6회 2사 상황에 등판하여 데빈 메소라코를 삼진 처리했다.[111] 하지만 후반기 들어 8월 중순부터 6경기에서 10실점하며 부진했고, 9월 5일 마무리 자리에서 물러났다.[112][16] 시즌 최종 성적은 64경기 등판, 6승 5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52, 64⅓이닝 80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후 레드삭스와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17]
2015년에는 다시 마무리 투수를 맡았으나, 4월 3일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시즌을 늦게 시작했다.[113] 5월 10일 블루제이스전에서 NPB/MLB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했다.[114] 하지만 8월 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타구에 오른손 손목을 맞아 골절상을 입었고, 그대로 시즌 아웃되었다.[115][116] 시즌 성적은 43경기 등판, 2승 4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40⅓이닝 47탈삼진을 기록했다.[18]
2016년에는 크레이그 킴브럴의 영입으로 주로 셋업맨 역할을 맡았다. 7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오른쪽 가슴 근육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118] 9월 5일 복귀했다.[119] 복귀 후 11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121] 최종 성적은 50경기 등판, 2승 3패 7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45, 47이닝 63탈삼진을 기록했다. 팀은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ALDS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스윕 패배했다. 우에하라는 ALDS 2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19][122] 시즌 후 FA가 되었다.
=== 시카고 컵스 ===
2016년 12월 14일, 시카고 컵스와 1년 6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20][123] 2017년 시즌 개막전인 4월 2일 카디널스전에서 컵스 데뷔전을 치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126] 시즌 동안 49경기에 등판하여 3승 4패 2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98을 기록했다. 11월 2일 FA가 되었다.[127]
=== MLB 주요 기록 ===
- 연속 무볼넷 경기수 : 36경기 (2010년 7월 19일 ~ 2011년 4월 15일, 역대 3위)
- 연속 경기 무실점 : 27경기 (2013년 7월 9일 ~ 9월 13일)
- 연속 이닝 무실점 : 30⅓이닝 (상동)
- 연속 타자 아웃 : 37명 (2013년 8월 17일 ~ 9월 13일, MLB 사상 10위, 구원 사상 2위)[102][103]
- 한 자리수 볼넷 100탈삼진 : 2013년 (MLB 사상 최초)
- 시즌 WHIP : 0.565 (2013년, 구원 역대 1위(40 이닝 이상))
- 포스트 시즌 연간 세이브 : 7세이브 (2013년, 역대 1위 타이)[14][234]
- 2013년 메이저 리그 최다 등판 : 86경기 (포스트 시즌 포함)
- MLB 올스타전 선출 : 1회 (2014년)
=== 연도별 수비 성적 ===
연 도 | 구 단 | 투수 (P) | |||||
---|---|---|---|---|---|---|---|
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2009 | BAL | 12 | 0 | 5 | 0 | 1 | 1.000 |
2010 | 43 | 2 | 3 | 0 | 0 | 1.000 | |
2011 | 43 | 1 | 2 | 0 | 0 | 1.000 | |
2011 | TEX | 22 | 1 | 2 | 0 | 0 | 1.000 |
2012 | 37 | 4 | 1 | 1 | 0 | .833 | |
2013 | BOS | 73 | 2 | 7 | 0 | 0 | 1.000 |
2014 | 64 | 3 | 7 | 0 | 0 | 1.000 | |
2015 | 43 | 2 | 2 | 0 | 0 | 1.000 | |
2016 | 50 | 1 | 4 | 1 | 0 | .833 | |
2017 | CHC | 49 | 0 | 5 | 0 | 0 | 1.000 |
MLB 통산 | 436 | 16 | 38 | 2 | 1 | .964 |
참조
[1]
웹사이트
Major League leaderboards for [...] pitchers with custom statistics
http://www.fangraphs[...]
2013-08-13
[2]
웹사이트
Koji Uehara, once forced to intentionally walk slugger chasing season home-run title, happy Wladimir Balentien was pitched to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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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胴上げ投手、Rソックス優勝 MLBワールドシリーズ[フォトレポ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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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畠山愛理ほかトップクラスのアスリートが所属するマネジメント事務所「スポーツバックス」、ポータル&会員サイトを開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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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が「全くかなわなかった」憧れの兄・隆明さんは売上げ170億円の社長になっ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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闘志力。―人間「上原浩治」から何を学ぶ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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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京大優勝報告会+大畑大介・上原浩治・建山義紀・同級生トークショ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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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世界一クローザーへの軌跡」打撃投手だった高校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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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が背番号「19」をつけ続けた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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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ベースボール増刊 大学野球95秋季リーグ戦展望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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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ベースボール増刊 大学野球95秋季リーグ戦展望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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圧倒的な強さを誇ったキューバはどこへ… | ショウアップナイ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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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4連勝、また由伸が常勝キューバ止めた/復刻 - 野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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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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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ベースボール増刊 大学野球98秋季リーグ戦展望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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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に聞く Q.22 セカンドキャリアについて考えていることはあり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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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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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ズバリ】「新人選手のレベルが落ちている」コーチ歴13年の倉野信次さんが語る若手の体と指導法の変化【あのドラ1投手にガチ説教!?】【ちゃんと野球の話SP③/3】【ソフトバンク巨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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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の雑談魂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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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験と私:上原浩治さん原点の浪人経験 苦しい時は19を見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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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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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この話は、あんまり話してないですね」巨人入団前のメジャー断念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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臼北信行のスポーツ裏ネタ通信:メジャーリーグでMVP級の大活躍――上原浩治はなぜ自らを「雑草」と呼ぶのか? (3/5) - Business Media 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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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浩治投手、西武・松井稼頭央内野手、ユニセフ・アフガン緊急募金に寄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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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 2004年プロ野球総決算号「激動」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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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 2004年プロ野球総決算号「激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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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が通算100勝 松坂と並ぶ191試合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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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NEWS
20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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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が来季メジャー挑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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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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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発抑えW出来高!上原オリオールズと合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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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が松井封じ!ヤ軍相手に初登板初勝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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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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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緊急降板、脱水症状左太もも裏つ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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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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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6回1失点も…右ひじ違和感で降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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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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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再びDLへ、投球禁止令で前半戦絶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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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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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ひじ重傷!腱部分断裂で復帰9月以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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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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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右ひじ違和感の上原にリリーフ転向案浮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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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0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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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新守護神・上原「やることは変わ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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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スポーツ
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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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今季終了、右ひじ回復せず個人トレ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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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米永住権取得!復活へ決意の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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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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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誕生日にDL入り 最短復帰は1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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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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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復帰で1回3者凡退「ホッと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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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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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右ひじ痛でDL入り、今季2度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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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1回無失点でメジャー初セー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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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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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と再契約 オリオールズが正式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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メジャーリーグの救世主?オールスターの超目玉デービス(オリオール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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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上原来季もレ軍 55試合登板で自動更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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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被弾「四球がすべ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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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軍逆転負け 上原「ダ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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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PS史上初3戦連続被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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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Wシリーズで雪辱狙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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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トレード拒否 ブルージェイズ移籍は破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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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右広背筋痛で故障者リスト入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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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獲得の決め手はメジャー歴代3位の制球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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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3者連続三振斬りも「不完全燃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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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Uehara to Red S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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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ox, Uehara make it official with one-year 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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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一番レベルが高い。やりがい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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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トイレが決め手」過去に痔を手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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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hara's unlikely rise to BoSox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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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球統計の神様」も驚き…上原は“球史”に残る守護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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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上原獲得して本当に良かった」結実した速攻オファ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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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lappable Koji nets ALCS MVP hon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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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がもみあげを剃った理由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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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 適時打許すも22戦連続無失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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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同点弾浴び連続試合無失点ストッ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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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初死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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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抑え投手に「やることは変わ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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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日米50S「ホッと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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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を球宴へ!投票は日本時間12日午前5時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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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55戦目登板3勝、来季契約勝ち取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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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新記録 26戦29回1/3無失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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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34人連続アウトの新記録!鍵は配球を支えるある球種と“ゴ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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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 野茂超え34打者連続アウト/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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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37人斬りは大リーグ史上10番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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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 連続アウト記録が途切れる/詳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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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球団初73回1/3で10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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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優勝、佐々木以来の日本人胴上げ投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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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衝撃3人斬り、11球全部ストライ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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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39試合ぶり被弾がサヨナラ本塁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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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 MVP「アクセル踏みっぱなし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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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vous' Koji fans one in All-Star Game debut/ Lester yields two runs in second inning of American League's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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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Uehara out as Red Sox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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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40歳、開幕は故障者リ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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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 日米通算100セーブは「通過点」も「誇りにしてい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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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が右手首骨折で今季絶望も…「復帰することを目標に頑張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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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ソックス・上原 新守護神加入で来季のセットアッパーを了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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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胸筋痛でDL入りの上原が24日ブルペン入り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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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ッドソックス上原が帰ってきた!故障癒え戦列復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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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復帰後初登板で1回を2三振無安打無失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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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ッドソックス 最終戦はブルージェイズに敗戦 上原&田沢の登板な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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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42歳の来季もメジャーでの現役続行に意欲「ボロボロになる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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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hara agrees to 1-year deal with C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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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軍終戦…上原、来季メジャー契約オファーなければ引退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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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復帰一問一答】上原、メジャーでなければ引退「軽はずみな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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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カブスデビュー戦で1回零封の上々スタート「ゼロで良かった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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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free agents for all 30 MLB t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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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今季限り引退示唆 日本球界復帰「考えて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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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巨人復帰会見「一生懸命やる」年俸は2億円プラス出来高 同じ年高橋監督からも「期待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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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復帰の上原、1年契約で年俸2億円プラス出来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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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規支配下選手登録|2018年度公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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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完璧救援!お立ち台で「おひさしぶりです!」「1点差しび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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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複雑です」ファン投票で11年ぶり球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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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がオールスター史上最年長登板達成! 1回1安打無失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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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世界2人目トリプル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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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連敗脱出目前…マシソン、上原打たれ6連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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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不振で2軍落ち「結果出てないから仕方ない部分あるし、悔しい思い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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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左膝手術は無事終了「これからリハビ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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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浩治が自由契約 左膝回復順調なら再契約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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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巨人と再契約、現役最年長に 年俸4分の1 背番号は原点の「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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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 涙の引退会見「もうちょっとやりたかったなという思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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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意引退選手 2019年度公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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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上原が引退「若手の投げる機会を奪いたくない」 - プロ野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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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さんがYouTubeチャンネル開設「野球理論や技術をすべての野球ファンに届け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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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氏、コロナ検査「陽性」で隔離され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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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蔵入り】巨人から謎の小包が届いたので開けてみた!10万人記念で未公開動画出します!【開封するのはプロ野球チップスだけじゃないww】【阪神の話もあります】【銀の盾】【ハイライ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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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氏が野球ドラマの“クローザー"で登場! 今晩放送「八月は夜の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で。」最終回レジェンドゲ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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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氏が張本勲氏「喝!」継承 TBSサンモニ御意見番に就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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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川球児氏「誇らしく思う」上原浩治氏とともに特例で名球会入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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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感謝】100万人突破!上原浩治からありがとう!そして松井秀喜さんとの約束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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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ジア野球選手権2003 (アテネ五輪アジア予選) 試合結果 (決勝リーグ) 中国 vs. 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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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8回オリンピック競技大会(2004/アテネ) 日本代表個人成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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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投手陣主将、星野監督揺るがぬ信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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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9回オリンピック競技大会(2008/北京) 日本代表個人成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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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代表引退「上位と力差あった」/野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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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ッドソックス上原浩治ネット批難「WBC辞退はしてません。呼ばれてないの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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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侍入りに意欲「出てみたくなってきているのは確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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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辞退のWBCは「自分が出た第一回とは全く違う感じだろうな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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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無敗のまま代表引退へ 星野ジャパン成田帰国会見リポ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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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Card: Koji Ue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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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ローザーとして蘇った上原浩治。MLBきっての“モテ男”の来季を占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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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史上最も制球力がいい投手は上原浩治! SO/BBから見えてくる投手の進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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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ォークの使い手”モリス氏断言「上原は素晴らしい制球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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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9回無死満塁で圧巻投球 全球ストライクで初セーブ「素晴ら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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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34人連続アウトの新記録!鍵は配球を支えるある球種と“ゴロ”。(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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数字が語る「上原浩治はポストシーズンに強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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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激レア】「さっきまでDIYしてた」監督退任後の驚きの生活!工藤公康さんがOB系YouTube初出演して下さいました【45万人突破&2022開幕記念】【大先輩降臨SP①/5】【ソフトバンク巨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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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引退覚悟から世界一までの軌跡」を独占激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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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が急に化けた!?絶好調の鍵は二重の“緩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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ダルビッシュの直球は手術後に進化!? 回転数、空振り奪取率、球速が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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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の144キロはシャープなナイ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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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2勝目、17球中15球直球で圧倒 米メディア驚愕「打者の目に見え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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衝撃の軌道…佐々木朗希投手の完全試合の裏に上原浩治が投げられなかった驚きのフォークボール(上原浩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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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メジャーへ独自開発“1本指カー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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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がダルビッシュに断られた!「スライダーの握り、教え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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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メジャーリーガーはどうなる? 上原浩治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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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は野球が純粋に好きな子ども巨人の先輩・橋本清が語る魅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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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 居酒屋でイチローに抱きつき!「興奮しすぎたか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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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チロー氏から「人間性に問題がある!」テレビ中継に映りブログにも批判、元巨人・上原氏が“無礼”の真相を告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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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ッドソックス上原浩治「中継ぎに降格?中継ぎバカにするな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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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はなぜ毎日ブログを更新す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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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初から来い」 上原浩治が日本のメディアに怒り心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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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は尚成から髪型「ルパン三世み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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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がヒゲ剃ったワケ「目立た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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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全救援の上原に地元紙大騒ぎ「実はスプリットを投げるヨーダじゃない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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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がレッドソックスを盛り上げている10の写真 彼はハイタッチを愛している。(実際には彼は全てのものを愛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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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ルティス、MVP上原に「最高の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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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正気じゃない」開幕強行の巨人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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ユージ、28歳でベスト・ファーザー賞 息子の手紙に「感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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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氏ジュニアは米名門アカデミーでメジャー目指すサウスポ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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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井秀喜氏「何で辞めたの?俺は辞めさせられたんだよ」引退の上原浩治氏に直球質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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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大谷翔平のトレード説に持論「やっぱ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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学童野球の送りバントと申告敬遠をどう思う?小学生に必要なのは勝利か、打ちにいく経験か。(上原浩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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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の上原浩治投手、契約金返還でメジャー移籍を直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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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と井川のポスティング要求は、わがままだ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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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ての選手にフェアじゃない…「菅野智之、巨人残留」で考えるスッキリしないポスティング移籍の違和感(上原浩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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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宮商工会議所青年部、米大リーグ上原投手に贈る /和歌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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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強のクローザー、不屈の雑草魂 メジャーリーガー・上原浩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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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スリートの魂「負けてたまるか レッドソックス 上原浩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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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高校野球テーマの「海と空と蓮と」でドラマ初出演 伊藤あさひの父親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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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なんで俺?」 演技挑戦も自虐「俳優には向いてない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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磯山さやか、投球披露で見事なコントロール! 松坂大輔「びっくり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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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浩治氏、華麗な投球フォームで魅了 今“狙っているタイトル”も明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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